세포부터 건강까지, 생명과학 교양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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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18.

    by. 의생과친구

    목차

      의학의 역사에서 항생제의 발견은 인류의 생명을 구한 혁신이었습니다. 특히 페니실린의 등장 이후, 세균성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현대의 수술과 암 치료 등 고위험 의료 행위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항생제는 만능이 아니며, 오남용으로 인해 **항생제 내성(Antibiotic resistance)**이라는 새로운 위협을 낳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항생제가 세균을 어떻게 죽이는지, 내성은 어떻게 생겨나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항생제의 작용 원리: 세균의 약점을 노리다

      항생제는 세균의 생존에 필수적인 구조나 기능을 차단하여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는 약물입니다. 항생제는 세포벽 합성 저해, 단백질 합성 억제, 핵산(DNA/RNA) 복제 방해, 대사 경로 차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가장 잘 알려진 페니실린 계열 항생제는 세균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펩티도글리칸(peptidoglycan) 합성을 억제하여 세균이 삼투압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되게 만듭니다. 이들은 주로 그람양성균에 효과적입니다.

      반면, **테트라사이클린(tetracycline)**이나 **에리트로마이신(erythromycin)**은 세균의 리보솜에 결합해 단백질 합성을 막습니다. 이처럼 항생제는 세포 내 대사 경로 중 인간 세포와는 다른 지점을 표적으로 삼기 때문에 **선택적 독성(selective toxicity)**이 가능하며, 세균만 선택적으로 공격합니다.

      2️⃣ 항생제 내성의 발생 메커니즘: 생존을 위한 진화

      항생제 내성은 세균이 항생제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유전적 변이 또는 유전자 획득을 통해 방어 능력을 갖추는 현상입니다. 내성은 자연선택의 한 형태로, 항생제에 노출된 세균들 중 살아남은 소수가 증식하면서 내성균이 우세해지는 방식으로 발생합니다.

      항생제 내성은 다음과 같은 경로로 생깁니다:

      • 표적 부위의 변형: 항생제가 결합해야 할 단백질이나 효소의 구조가 변형되어 작동하지 않음.
      • 약물 분해 효소 생성: 대표적으로 베타-락타마제(β-lactamase)는 페니실린 계열 항생제를 분해.
      • 배출 펌프 활성화: 항생제를 세포 외부로 내보내는 펌프 단백질을 활성화.
      • 세포막 투과성 변화: 항생제가 세포 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로를 조절.

      더 큰 문제는 내성 유전자가 **플라스미드(plasmid)**라는 DNA 조각에 실려 다른 세균에게 **수평적으로 전달(horizontal gene transfer)**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내성의 확산 속도를 급격히 증가시키며, 다제내성균(MDR, superbug)의 출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3️⃣ 내성균의 실제 위협: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조용한 팬데믹

      항생제 내성은 단순히 특정 항생제가 듣지 않는 문제를 넘어 치료의 마지막 보루를 무너뜨리는 현상입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항생제 내성을 “21세기 최대의 공중보건 위협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균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MRSA: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 CRE: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
      • VRSA/VRE: 반코마이신 내성 포도상구균/장구균

      이들 슈퍼박테리아(superbug)는 대부분의 항생제가 듣지 않아 감염 시 사망률이 높고, 의료진의 감염 부담도 큽니다. 병원 환경에서는 인공호흡기, 도뇨관, 수술부위 감염 등을 통해 전파되며, 면역력이 약한 환자에게 치명적입니다.

      게다가 항생제의 개발은 매우 느린 반면, 내성의 확산은 빠르기 때문에 의료 시스템이 내성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현재는 일부 소수의 고가 항생제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마저도 내성이 생기면 더는 치료 수단이 없습니다.

      4️⃣ 항생제 사용의 올바른 방향: 개인과 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원칙

      항생제의 작용 원리와 내성 문제: 인류가 맞서는 세균의 진화

      항생제 내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항생제 사용은 내성을 불러오는 가장 큰 원인이며, 다음과 같은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1. 감염이 아닌 바이러스성 질환에 항생제 사용 금지: 감기, 인플루엔자 같은 바이러스 질환에는 항생제가 효과 없습니다.
      2. 처방받은 항생제는 반드시 정해진 기간만큼 복용: 증상이 사라졌다고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면 일부 세균이 살아남아 내성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3. 자기 판단에 의한 항생제 복용 금지: 남은 약을 복용하거나 지인에게 받은 약을 쓰는 것은 위험합니다.
      4. 축산과 농업 분야의 항생제 사용 감시: 가축 사육 시 성장촉진 목적으로 사용되는 항생제는 내성균의 확산을 촉진합니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신규 항생제 개발, 백신 확대, 감염 관리 시스템 개선 등이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박테리오파지 치료법, 항균 펩타이드, 면역 조절 치료 등 새로운 접근법들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항생제는 인류의 생명을 지켜온 위대한 발견이지만, 그 효과는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무분별한 사용은 결국 그 힘을 잃게 만들고, 누구도 치료받지 못하는 미래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항생제 내성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건강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협력해야 할 의학적, 생물학적, 사회적 도전 과제입니다. 올바른 사용과 지속적인 연구만이 우리와 미래 세대를 이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