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부터 건강까지, 생명과학 교양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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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17.

    by. 의생과친구

    목차

      암은 전 세계적으로 사망 원인 1위에 가까운 치명적인 질병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생물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우리 몸의 정상적인 세포들이 어째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무한히 증식하게 되는 걸까요? 그리고 왜 어떤 세포는 암세포가 되고, 어떤 세포는 그렇지 않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암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세포 수준의 변화, 암세포의 주요 특징과 생존 전략, 그리고 정상세포와 암세포의 차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암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돌연변이의 축적

      암은 단 한 번의 실수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수년에 걸쳐 유전자에 여러 차례 **돌연변이(mutation)**가 축적되면서 암세포가 탄생합니다. 돌연변이는 외부 환경(예: 방사선, 발암물질, 바이러스 감염 등) 또는 내적인 요인(예: DNA 복제 오류, 유전적 요인)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암 발생과 관련된 유전자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포의 증식을 촉진하는 종양유전자(oncogene), 다른 하나는 세포 성장을 억제하고 손상된 세포를 제거하는 **종양억제유전자(tumor suppressor gene)**입니다. 대표적으로 p53 유전자는 손상된 DNA를 가진 세포를 자살시키는 기능을 하지만, 이 유전자가 망가지면 암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이러한 유전적 변화가 축적되면서 세포는 더 이상 주변의 신호를 따르지 않고 자율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암의 시작점입니다.

      2️⃣ 암세포의 주요 특징: 생존을 위한 10가지 능력

      암의 발생 원리와 암세포의 특징: 우리 몸에서 벌어지는 변이의 드라마

      암세포는 단순히 증식만 하는 비정상 세포가 아닙니다. 암세포는 생존을 위해 다양한 ‘능력’을 획득하게 됩니다. 생물학자 **한나한과 와인버그(Hanahan & Weinberg)**는 암세포의 특징을 다음과 같은 10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세포 자가사멸 회피
      2. 지속적인 성장 신호 수용
      3. 성장 억제 신호 무시
      4. 무한 증식 능력 획득
      5. 혈관 신생 유도
      6. 조직 침입과 전이 능력
      7. 면역 회피
      8. 유전체 불안정성
      9. 에너지 대사 방식 변화
      10. 염증 환경을 이용한 생존

      이러한 특성들은 암세포가 정상적인 세포와는 완전히 다른 생리적 메커니즘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일반 세포는 일정 횟수만큼 분열한 뒤 죽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암세포는 텔로미어를 유지하는 텔로머레이스 효소를 활성화시켜 무한 분열이 가능합니다.

      3️⃣ 정상세포와 암세포의 차이: 통제에서 무정부 상태로

      정상세포는 주변 세포와의 접촉억제(contact inhibition), 프로그램된 세포사멸(apoptosis), 조직 내 역할 수행 등의 특성을 갖고 있으며, 체내 환경과 밀접한 상호작용을 통해 조절됩니다. 하지만 암세포는 이 모든 조절 메커니즘을 무시합니다.

      암세포는 생존과 증식을 위해 독립적인 신호 체계를 만들고, 주변 조직을 파괴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미세 환경을 조성합니다. 또한, 기존 조직 경계를 넘나들며 림프관이나 혈관을 통해 다른 장기로 이동하는 능력(전이)을 획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암을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세포 생물학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유기체’**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더불어, 암세포는 에너지 생산 방식도 다릅니다. 일반 세포가 산소를 사용한 산화적 인산화를 주로 활용한다면, 암세포는 **해당과정(glycolysis)**을 주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며, 이는 빠른 증식을 위한 전략으로 해석됩니다.

      4️⃣ 암 치료의 관점: 암세포의 약점 이해하기

      암의 복잡한 특성은 치료를 어렵게 만들지만, 동시에 치료 표적이 될 수 있는 많은 단서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암세포는 HER2 수용체를 과도하게 발현하는데, 이는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Herceptin)**의 주요 타겟입니다. 또, 면역 시스템을 회피하는 암세포의 특성을 이용해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 같은 치료법도 개발되었습니다.

      암은 더 이상 무조건 '죽음'을 의미하는 병이 아닙니다. 다양한 표적치료제, 면역항암제, 유전자 치료 등이 등장하면서 환자의 생존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암세포의 작동 원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밀하고 개인 맞춤형 치료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암은 단순한 세포 질환이 아닌, 생명 시스템의 통제 실패와 진화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의 세포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생존과 증식을 위해 변형될 때 암은 시작됩니다. 그러나 현대 생명과학은 이러한 암세포의 속성을 하나하나 밝혀내며, 치료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암은 여전히 도전적인 질병이지만, 그 속을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는 더 나은 대응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